
남은 것들에 대해
“10월의 마지막 날에, 이런 어두운 곳에서는 ‘귀신’이랑 만날 수 있다고 텔레비전에서 봤어,” 인간들의 고전 공포 영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엑토플라즘 덩어리보다도 창백한 소녀가 중얼거렸다.
“21호, 임무 중에 말이 많아,” 소녀보다 한 발짝 앞서 조명 시스템이 고장 나 어둠에 싸인 복도를 걷던 베라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설마... 무섭니?”
의문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과거에,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버려진 건물을 탐색하는 임무 따위보다 수십 배는 더 끔찍한 일을 수도 없이 보아 왔고, 몸소 체험하게 될 그녀가 고작 어둠과 죽은 사람의 영혼이 두렵다는 이유로 잡담하고 싶어 할 리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하는 질문이었다.
“21호, 임무 내용 확인 중,” 소녀는 기죽지 않고 말했다.
지옥문의 수호자,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당, 약탈자들, 니콜라의 개, 등의 별명으로 악명 높은 케르베로스 소대의 리더와 그녀의 충실한 21호는 ‘탐색 임무’라는 명목으로 공중정원 변두리 거주 구역의 반쯤 철거되다 말고 버려진 민간인 청소년 대상의 2차 교육 시설—흔히 “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내부에 있었다. 둘이 특기를 살려 전장에서 날뛰는 대신, 평소라면 느긋한 시간 낭비야, 수준 낮은 괴담에 나올 듯한 폐교 탐험 따위, 무개성한 얼굴의 약해빠진 구조체들에게나 맡겨, 라고 비웃었을 일을 담당하게 된 데에는 다수의 불행한 우연이 얽혀 있었다:
우선, 형편없이 술에 취한 한 무리의 민간인들이 '담력 시험'을 위해 폐교에 들어갔다 도망쳐 나온 사건이 있었다. 그들 중 하나의 증언에 따르면, 건물 내부에서 몇 년 전, 의심의 여지 없이 죽은 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그것은 절대, 절대 알코올의 영향으로 인한 환각이 아니었다고도 덧붙였다.
두 번째로, 슈퍼 AI의 관리하에 놓인 공중정원에라면 버려진 건물과 같은 불완전한 것은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게슈탈트와 상층부가 내린 결정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전달되고, 실제로 처리되는 과정에서 무언가가 누락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했다. 이번 사건의 배경이 되는 곳은, 원래 구역째로 철거된 후 재배치될 계획이었지만 도중에 어떤 이유에서인지 작업이 중단되었고, 전쟁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고, 권력자가 거주하는 장소도 아니었기 때문에 상당히 오랫동안 그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하필이면 지구의 가을에 해당하는 10월 말--비록 공중정원에서는 365일 내내 변함없이 일정한 인공 기후가 유지되었지만, 그곳의 주민들은 여전히 지상의 달력에 맞추어 각종 축제와 휴일을 즐기기를 좋아했다.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난다는 날의 축제인 할로윈을 포함해서. 상업 지구 등에는 벌써 기분 나쁘게 조각된 호박, 어설프고 조잡한 박쥐 모양의 장식 등이 늘어서 있었고, 이러한 분위기는 나약한 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는 우연이 겹쳐진 결과, 사건은 공중정원 구석, 몇몇 사람들의 통신 단말에서 '사실 공중정원 상층부는 죽은 자들의 영혼, 혹은 의식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속삭여지게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것이 사령부의 촘촘한 감시망에 잡히게 되었고, 아무리 근거 없는 헛소문처럼 보일지라도 에덴의 구조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 있는 루머는 말살해야 한다고, 혹시라도 배후에 더 사악한 무언가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그러한 이유로 '이런 일'이라면 확실하게 믿고 맡길 수 있는 케르베로스 소대에게 '탐색 임무'가 할당되었다.
"이 문 너머의 복도만 지나면 목적지야," 베라는 단말로 폐건물 내부의 지도를 재차 확인하며 말했다, "21호.“
귀찮게도 외부에서 목표가 있다고 추정되는 지점까지 통하는 루트는 전부 막혀 있었기 때문에, 그녀와 21호는 폐교 탐험을 즐길 수밖에 없었다. 녹티스가 있었다면 걸리적거리는 것이 있으면 폭파해 줄까? 혹은 그냥 건물 통째로 터뜨려 버리고 빨리 돌아가자라고 제안하고, 실제로 그 계획을 실행했겠지만, 이번만큼은 아쉽게도 그는 뒷정리를 위해 다른 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소녀는 앞을 가로막는 녹슨 문이 얌전히 열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 듯,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괴력을 팔에 실었다. 하지만 그것은 허무하게도 간단하게, 삐걱대는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열렸고, 그녀의 시각 모듈이 공간의 전환에 미처 적응하기 전, 힘을 준 반동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우스꽝스럽게 넘어졌을 만한 장면이었지만, 실험실과 전장에서 단련된 구조체는 그런 움직임을 하지 않았다—혹은, 이미 전투 기계에게 그런 서투름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그녀가 순간적으로 멈춰 선 것은 균형 감각의 부족으로 인해서가 아닌, 발아래 느껴지는 불쾌한 감촉 때문이었다. 적당히 기분 나쁜 탄력성과 그럴 듯하게 느껴지는 크기는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인간의 머리를 밟았던 때와—
"뭐야, 21호," 베라가 단말의 조명 기능을 가동하는 딸깍, 하는 소리와 동시에 21호의 발아래 있던 그것에서 공기가 새어 나갔다, "착한 멍멍이처럼 공을 주워오고 싶어? 아쉽지만 그건 바람 빠진 쓰레기야. 버려." 리더의 시선은 얼룩덜룩한 공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인간들의 공놀이에 사용되던 도구, 라고 알아볼 수 있었다.
단말에서 새어 나온 날카로운 빛과, 복도의 깨진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석양의 핏빛이 한데 섞여 복도에 널브러진 각종 잔해와 쓰레기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상상력이 과도하게 풍부하거나, 시력이 나쁘거나, 혹은 둘 다에 해당하는 경우라면 슬쩍 보고는 초자연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고 믿을 법한 광경이었지만, 구조체의 시각 모듈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다. 조금만 침착하게 생각하면 전부 평범한 것을 공포로 포장하는 것은, 나약함이 원인일까, 아니면 그렇게 해서라도 불가능이 가능하다고 믿고 싶어서일까?
"쓸데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는 사냥감의 흔적마저 놓치더니, 돌아가면 추가 전투 연습이나 하면서 반성해," 베라가 핀잔을 주며 허리를 숙여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더럽혀진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아," 소녀는 그제야 청각 모듈이 포착한 희미한 음성 신호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곳이 전장이었다면 당장 큰 부상을 입었어도 놀랍지 않을, 추가 전투 연습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닌 실수였다. 리더가 왼손으로 들고 있는 그것에서는 심한 잡음이 섞여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분명히 인간의 목소리라고 인식 가능한 소리가 기분 나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데이터베이스와 대조 완료. XX년 생산된 녹음 장치."
텔레비전에서 인간들이 기념할 만한 일이나, 헤어질 때나, 장난치고 싶을 때, 자신의 목소리나 영상을 녹음한 것을 서로에게 선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고, 알 길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지만, '귀신'이라고 오해받은 것의 정체는 이 녹음 장치였을 것이다.
"바보 같긴," 베라가 드물게 불만을 드러내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그녀는 손에 살짝 힘을 주어 목소리를 산산조각냈다. 그토록 한참 전에 생산된 물건이 아직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미 초자연적일 정도였고, 그것의 상실을 슬퍼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전부 사라졌거나, 신경 쓰지 않게 되었을 것이 분명하니, 주인 잃은 흔적에게 그 행동은 안락사나 마찬가지였다.
*
둘이 임무를 마치고 귀환할 때는 이미 태양을 모방한 인공 조명이 은은한 달빛으로 대체되어 있었다. 그녀들이 지나가는 거리는 다들 10월 마지막 날의 축제를 다른 곳에서 즐기고 있기 바빠서인지, 수 마일 밖에서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는 베라의 붉은 머리와 21호의 창백한 외곽선을 최대한 피하려는 노력 때문인지는 몰라도, 수상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사람의 흔적이 없는 에덴 정원에서, 21호는 의식의 바다에 맴돌던 질문을 꺼내기 적절한 순간이라고 판단했다.
“대장은 귀신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너는?” 베라는 죽은 자들도 매료될 것만 같은 미소를 띠고 그녀를 마주했다, “먼저 네 대답을 주면 특별히 보답으로 말해줄게.”
“21호, 귀신 안 믿어,” 소녀는 잠시 멈추고 말을 이었다. 아무도 의견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라고 그녀를 추궁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과학적으로 당연한 그 대답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죽은 사람들이 귀신이 되어서 돌아올 수 있었다면, 한참 전에 돌아왔을 텐데.”
21호의 어찌 보면 황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논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듯, 베라의 미소가 약 4분의 1초 동안 굳었다가 곧이어 더욱 달콤해졌다.
“나도,” 그녀가 말했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역겨워.”
산 자들의 땅에 미련이 남아 저승에서 돌아오는 영혼이 존재할 리 없다는 사실을 둘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들의 짧은 질문과 대답은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를 재확인하는 허울에 불과했다.
인간이 신을 죽인 세계에서 고작 귀신 따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웃긴 일이겠어?
인류는 하데스의 왕좌를 빼앗아, 기계의 몸을 가진 반신과 같은 전사들을 만들어냈고, 그녀들을 머리 셋 달린 환상의 동물 대신 지옥의 수문장으로 삼았다.
“21호, 임무를 마친 기념으로 즐거운 일이나 하러 갈래?” 베라는 양손의 우아한 손가락을 질리도록 익숙한 변덕스러운 태도로 맞대며 제안했다.
오히려 그들이야말로 귀신이라고 불려야 마땅하지 않을까? 10월 31일의 괴물에 어울리지 않을까? 피와 살로 된 육신은 사라진 지 오래인데, ‘영혼’은 새로운 그릇에 깃들어, 인류의 끝을 앞당긴 적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산 자들의 세계로 돌아온 그들이라면? 그러니까, 오늘은 ‘괴물’에게 어울리게—
“—사탕을 약탈하러 가자.”
그러고 보니, 산 자들이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망상은 넘쳐나도, 이미 죽은 자들이 다시 죽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추측을 제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
그리고 그녀들은 직접 거대한 미지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필사적으로 존재에 매달리며, 빼앗는 것으로 존재를 채우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