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ppy Halloween
익숙하게 잠금을 해제하고 방 안에 들어섰을 때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인가 눈을 끔뻑이며 지금 보이는 것이 허상이 아닌지 확인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눈앞에 있는 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얀 천으로 뒤덮인 길쭉한 무언가가 방안에 우뚝 섰다. 아무런 무늬 없는 흰 천 아래로 사람으로 보이는 다리가 삐죽 튀어나온 것으로 보였다.
누군가 장난을 친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핼러윈이라 하던가. 아마 저 흰 천은 유령으로 분장이라도 한 것이겠지.
이런 장난을 칠만한 게 누가 있을지 머릿속으로 몇몇 후보자를 꼽아보며 그를 향해 다가갔다.
“trick or treat. 사탕은 됐으니 정체를 밝혀주시겠어요? 이곳은 제 개인 사무실입니다.”
뚜벅뚜벅 구두 소리를 내며 그리 말했다.
이상한 점이 있다. 이곳은 소대의 휴게실도 아닌 자신에게 할당된 개인실이다. 이곳에 침입할 수 있는 건 몇 되지 않는다. 상대에게 다가가며 다시 한 번 그를 살폈다. 키는 자신보다 작았다. 기껏해야 170cm를 조금 넘을 듯했다. 천 아래로 삐져나온 다리는 오랫동안 입은 것일까 헤진 하얀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신은 구두. 눈에 익은 것들이다.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다가 마침내 멈춰 섰다. 그럴 리 없다. 저 옷이 저 구두가 지금 이곳에, 공중정원에 남아있을 리가. 앞으로만 나아갔던 걸음이 멈추었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있던 그는 안쪽에서 손을 움직여 천을 들어 올렸다. 아래부터 천천히 그 정체가 드러난다.
하얀 바지에 검은색 셔츠. 단정하게 접어 올린 소매. 부드럽게 웃는 입꼬리. 상냥한 물빛 눈동자. 이리저리 삐죽거리는 밀금빛 머리칼.
“trick or treat, 이던가. 안녕 ……모리.”
그는 물러선 걸음만큼 다가와 거리를 좁혔다. 다정히 웃는 낯이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해왔다. 잊을 리 없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한들 이 모습만은 잊을 리 없었다. 심장이 쿵쿵 맥동하는 것이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가슴이 뻐근해지고 머릿속이 뒤엉킨다.
“……형.”
아니다. 형은 지금 임무를 위해 지상에 내려가 있다. 게다가 저 모습은 ‘지금’ 형의 모습이 아니었다. 기체를 바꾸면서 조금 키가 커졌으며 머리카락색도 옅어졌다. 그러니까 저건 형이 아닐 텐데. 당장 그레이 레이븐에 속한 아무에게나 통신을 걸어보면 확실해질 일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늘 머릿속에 되새겼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눈가가 시큰한 게 금방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부옇게 변할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나보다 작았잖아. ‘형보다 더 클 거야! 그래서 형을 내려다볼 거야!’라고 했던 게 ‘나’에겐 바로 얼마 전인데…… 지금은 내가 올려봐야 한다니. 많이 컸네.”
목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 놓인 존재를 끌어안고 등을 두드리는 다정한 손길을 받아들였다.
*
지구 탈환 작전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침식체 수가 줄어가고, 지구에 세운 거점은 서서히 구역을 넓혀가며 다시 지구에 정착할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공중정원에 탑승한 사람이든 지구에 남은 사람이든 모두의 가슴 속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희망이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한결 편안해진 사람들은 황금시대 때 맥이 끊어졌던 축제를 다시 즐기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거창하게는 하지 못하더라도, 각자의 방식으로 축제를 즐겼다.
홀로그램 등으로 장식된 공중정원 길거리는 소란스러웠다. 소소한 분장을 하고 길거리에서 작은 사탕이나 과자를 나누어주는 모습은 생소했다. 공중정원에 탑승하고 지금껏 이 정도로 거리가 떠들썩했던 적이 있던가. 제법 사람이 붐비는 거리를 걸었다. 자신의 허리춤까지 올라올 정도인 소년이 흡혈귀 분장을 하고 “trick or treat!”을 외치며 뛰어다녔다.
형은 분장이랍시고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걸었다. 눈가를 아슬아슬하게 가릴 정도로 천을 덮은 모양새는 마치 교회나 성당에서 쓸 법한 미사포처럼 보였다.
“언제나 이런 분위기야?”
“아니. 다른 때는 이렇게까지 활기차지 않아. 각자 일로 바빠서 이렇게 모이는 것도 드물어. 오늘은 할로윈이라 시끌벅적한 거야.”
공중 정원 내를 돌아다니니 형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질문해오길 반복했다. 이곳은 어디인지, 여기서 사는 건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공중정원에 대한 질문도 있었지만, 걱정거리가 대부분이었다. 형은 언제나 내 걱정뿐이었지. 그때도 지금도 날 걱정해주는 상냥한 형이다.
반사적으로 질문에 대답해주며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형’은 정말 형일까. 외형은 그와 똑같았다. 말투나 버릇, 목소리 등 무엇하나 다르지 않았다. 물리 접촉도 가능했다. 아까 자신이 끌어안은 것도 그렇지만 지금도 몇 번인가 거리를 뛰노는 아이들과 부딪혀 미안하다며 웃으며 인사하지 않았던가. 환각과 환청이라면 다른 사람과 닿거나 할 수 없을 테니 자신이 미쳤다는 선택지는 제외해도 좋겠지. 아니면 오늘이 할로윈이라서 생긴 이상 현상일까.
할로윈은 켈트인의 전통 축제 사윈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켈트 족은 한 해 마지막 날이 되면 음식을 마련해 죽음의 신에게 제의를 올림으로써 죽은 이들의 혼을 달래고 악령을 쫓았다고. 그때 악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악령으로 착각하도록 분장한 풍습이 있었는데, 그것이 분장 문화의 원형이 되었다고 했던가.
언젠가 눈에 익혀 두었던 자료를 떠올리며 제 옆에서 걷는 형을 바라보았다. 하얀 천을 뒤집어쓰고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퍽 동화책에 나올 법한 엉성한 유령과 닮아 보였다. 정말 유령일까. 자신도 형도 비과학적인 건 믿지 않았다. 자신이 본 형은 언제나 논리와 이성으로 모든 일을 판단해왔다. 그런데 그런 형이 유령으로 내 앞에 나타날까.
“먹을래?”
“쿠키? 언제 산 거야?”
“방금 저 아이가 하나 주고 갔어. 같은 유령이니까 선물로 주겠다고 하더라.”
형은 저기 친구와 함께 손을 흔들며 뛰어가는 꼬마 유령을 향해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자신에게 내민 손에는 주황색으로 호박이 그려진 아기자기한 쿠키가 올려져 있었다.
“형은 안 먹어?”
“난 못 먹으니까.”
그 말을 들은 즉시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형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하얀 천이 방해해 읽을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고 형의 손에 올려진 쿠키를 집어 들고 입 안에 넣었다.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에 남지 못했다.
*
거리를 돌아보고 다시 개인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임무를 끝내고 복귀한 형과 마주치면 어쩌나 가슴 졸였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끌벅적했던 거리와 반대로 함교 내는 조용했다. 구두 굽이 바닥을 디딜 때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가 우렁차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무사히 복귀하니 창밖으로 보인 풍경은 이미 밤이었다. 시계를 바라보니 벌써 오후 11시를 넘어선 때였다. 그렇게 오래 걸었던가. 갈 수 있는 곳은 모조리 돌아다니며 소개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장시간 걸어 녹초가 된 자신과 달리 형은 멀쩡해 보였다.
참지 못하고 소파에 무너지듯 앉으니 형은 하얀 천을 더욱 뒤집어쓰며 소파 앞까지 다가왔다.
“과자 안 줄 거야?”
“과자?”
“인사할 때 trick or treat라고 했었잖아.”
“아…… 그랬었지.”
“없으면 장난칠 거야.”
쿡쿡 웃음을 섞어 말한 목소리는 어딘지 멀게만 느껴졌다. 과자, 과자…… 개인실에 음식이라고 해봐야 커피뿐이었다. 커피는 음료지 과자가 아닌데.
“나도 trick or treat 했지 않아?”
“그래서 하나 줬잖아. 호박이 그려진 쿠키.”
“형이 준비한 게 아니었는데.”
“내가 받았으니 내 것이 된 거지. 그리고 그걸 모리 너에게 준 거고. 내 소유의 과자를 건넸으니 된 거 아닐까.”
“……형 되게 치사한 거 알아?”
형은 아무런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나도 그 웃음소리에 이끌려 따라 웃다가 소파 등받이에 몸을 맡기고 형을 올려다보았다.
“좋아. 어떤 장난이 치고 싶은데?”
그리 묻자 곧바로 시야가 새하얗게 뒤덮었다. 머리에 가벼운 무게가 더해지고 귓가에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을 때 형이 자신에게 천을 뒤집어씌웠다고 인식했다. 천에 마찰 된 머리가 제멋대로 뒤엉켰다.
“우왓!”
짧은 비명을 지르자 곧이어 하얗기만 했던 시야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밖에서 도달한 빛의 윤곽만 겨우 인식할 수 있을 정도인지라 그림자의 정체가 형이라는 것을 늦게 알아챘다. 자신을 감싸온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끌어안고 등을 쓸어주는 감각만이 존재했다.
“미안해.”
“……왜 사과해?”
“네가 어릴 때는 이렇게 오랫동안 놀아주지 못했잖아. 네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은 했어도 조금 더 네 곁에 있어줬어야 했어.”
이건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웃으면서 그리 말하려 했지만, 목이 물에 잠겨버렸다. 몇 번인가 얕은 호흡을 내뱉고 숨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지난 일이잖아. 형도 많이 노력했다는 거 알아. 그리고…… 오늘 이렇게 날 만나러 와줬잖아. 해가 질 때까지 나랑 놀아줬으니까.”
“오늘 즐거웠어?”
손을 들어 형의 셔츠를 부여잡았다. 몇 번인가 고쳐 쥐며 고개를 뻣뻣하게 끄덕였다.
“다행이야.”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는 희미했다. 지금은 몇 시일까. 아직 11시일까. 아니면 곧 자정이 될까.
“고마워. 오늘 정말 즐거웠어. 잊지 못할 할로윈이 될 거야.”
“그래.”
“행복한 추억 만들어줘서 고마워. 이제 찾아오지 않아도 돼. ‘형’이 없어도, 날 소중하게 생각하는 형이 있으니까.”
“……그래.”
등을 쓰다듬는 손길이 멀어져만 갔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형을 위해 힘낼게.”
“응. 그렇지만 ‘나’도 네가 무리하는 건 원하지 않을 거야.”
“알고 있어.”
나를 끌어안았던 품이 멀어져만 갔다. 나는 셔츠 자락을 놓고 자신을 뒤덮은 천 자락을 걷어내려 손에 쥐었다.
“Happy Halloween. 모리.”
흐릿했던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천을 끌어내렸다. 사라지는 형의 얼굴은 다정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Happy Halloween.”
아무도 없는 허공에 그리 답을 주고 아직 형태를 남긴 하얀 천을 끌어안았다.
희미하게 그때 그 집에 있던 이불의 냄새가 풍긴 것 같다.
*
─……Happy Halloween.
통신 너머로 보이는 건 코스튬을 입은 형의 모습이었다. 검은색과 검붉은 색이 어우러진 코스튬은 제법 잘 어울렸다. 그러나 그 옷을 입은 본인은 부끄러운 건지 귀 끝이 붉어지고 표정을 와락 구기고 있었다.
“Happy Halloween. 형, 그 옷은 뭐야?”
─오늘이 할로윈이니 같이 즐기자면서 카무이 녀석이…… 위험하잖아!
─안녕 리의 동생!
형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등장한 건 익숙한 얼굴이었다. 카무이도 할로윈에 맞추어 코스튬을 입은 모양이었다. 멀긴 해도 뒤쪽에 그레이 레이븐 소대나 차징 팔콘 소대 등 익숙한 면면이 할로윈을 한껏 즐기고 있었다.
“시끌벅적하네. 즐거워 보여.”
─나는 이런 거 필요 없다고 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리 형! 혼자만 빠지면 재미없잖아!
─누가 네 형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에 웃어 보이자 형은 진정된 모습으로 사람이 적은 곳으로 이동하며 통신을 이어갔다.
─너희 쪽도 임무는 없던 것 같은데. 오늘은 쉬는 게 어때? 공중정원도 할로윈 분위기인 것 같더라.
“맞아. 거리가 할로윈 장식으로 가득해.”
─모리, 너만 괜찮다면 이곳 일이 끝나면 공중정원에서 만날까 하는데.
“그거 입고 와주는 거야?”
─……아니. 절대.
“하하, 아쉽네. 시간 나니까 돌아오면 연락해줘.”
─알겠어. 과자는 받았어?
“하나 받았어.”
소파 앞에 놓인 긴 테이블 위에서 비닐로 포장된 쿠키 하나를 화면에 비추며 흔들어 보였다. 주황색으로 호박이 그려진 아기자기한 쿠키였다.
─누구한테?
“꿈에서 받았어.”
꿈에서 아주 소중한 사람에게 받았어. 뒷말은 하지 않고 의아함을 숨기지 못한 형을 보며 웃어버렸다.
오늘은 즐거운 할로윈이 될 것만 같았다.